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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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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독립운동가(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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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인선 등록일 09.04.02 조회수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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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훈처, 독립기념관, 광복회와 청주보훈지청, 충주보훈지청, 광복회 충북지부는 각각 2009년 4월 이달의 독립 운동가를 아래와 같이 선정하였습니다.

 

 4월의 독립운동가 윤기섭(尹琦燮)선생 

◈ 독립군 양성에 앞장선 임시정부 요인 ◈


국가보훈처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1908년 안창호 등과 ‘청년학우회’를 조직하고,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 교장 및 상해 육군 무관학교 교관으로 독립군을 양성하는 한편, 임시정부 군무장 등 요인으로 활동하였던 윤기섭 선생을 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의 뜻을 기리고자「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선생은 1887년 4월 4일 경기도 파주의 해평 윤씨 명문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강원도 철원의 문장가 박초양 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서울 보성학교를 제1회로 입학하여 1909년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이후 평북 정주의 오산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민족교육에 종사하였고, 신민회에 가입하여 애국계몽운동에 투신하였다.
1911년 선생은 ‘안명근사건’과 ‘105인사건’ 으로 이승훈 등이 구속되어 옥고를 치르면서 오산학교는 어려운 지경에 처하게 되자,  1911년 8월, 서간도 유하현 삼원포로 망명하여 이시영, 이동녕 등과 함께 한인 자치기관 ‘경학사’를 설립하고, 산하에 ‘신흥무관학교’를 창립하여 10년간 학감 및 교장을 역임하면서 수많은 군사 인재를 양성하였다.

1920년 2월 말 임시의정원 서간도 의원으로 상해에 도착한 선생은, 독립전쟁 뿐만 아니라 외교활동에도 관심을 기울여 1921년 11월 태평양회의에 참석하는 각국의 대표들에게 독립청원서를 발송하였다. 1926년 12월부터 1935년까지 임시정부 국무원으로 선임되어 군무장 등으로 활약한 선생은 독립운동정당 통합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1935년 남경에서 민족혁명당 창당의 결실을 맺고, 당보부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1943년 3월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무부 차장에 임명되어 독립운동을 계속하던 선생은, 해방 후 환국하여 민주주의민족전선, 민족혁명당, 민족자주연맹 등에서 활동하였고 1950년 5월 30일 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지만 한국전쟁 당시 다른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납북되어 1959년 2월 27일 향년 73세로 서거하였다.

1989년 대한민국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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